그림

[스크랩] 박수근의 그림

맑은 계곡 2006. 7. 15. 23:41

    
 
    박수근의 그림을 보면 정지용의 시 “향수”가 생각난다. 유난히 뒷모습이 많은 그의 그림엔 예쁠 것도 없는 그의 아내가 있다.  농가의 여인으로, 아이에게 등을 내어 주는 어머니로, 보따리를 짊어지고 장으로 가는 여인으로, 나물을 캐고, 절구질을 하고, 맷돌질은 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화가로서 무엇인가를 그려야 하는 박수근에게는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모델이 없었으리라. 어찌 꿈엔들 잊힐 수 있겠는가? 장터에 나뭇잎을 떨어뜨린 가난한 나무 그리고 그 그늘서 휴식을 취하는 군상의 뒷모습 또한 어떻게 잊힐 일이겠는가?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오르내리는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그의 사진 에세이 <뒷모습>에서 “뒤쪽이 진실이다.”라고 했다.  굳이 그의 말을 빌려서 하는 말이 아니라 박수근의 그림에서 돌아서 사람의 모습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는 듯하다.
    
 

 
    
 "박수근님의 그림"
 

   내가 박수근의 기념관을 찾은 것은 올봄 양구에서 열린 국토 정중앙문화축전에 갔다가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였다. 그때까지 나는 그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향토작가라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찰쌓기로 비스듬히 쌓아올린 돌담을 돌아서 전시실에 들어섰다.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들은 기념관의 크기와 위용에 어울리지 않는 손바닥만 한 치부책에 연필로 함부로 그려진 그림들이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은 커봐야 A4 크기 정도였다. 그렇게 첫 대면에서 서운함과 실망이 있었지만 그것이 내게 알 수 없는 은근한 연민이 될 줄은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아낙들의 등이며 사내들의 군상이 나의 삶과 오버랩되면서 알 수 없는 회상을 만들어 냈다. 쉽게 잊혀 질 것 같았던 그림들이었는데 말이다.

    

   요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곧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과 통한다고 한다. 그래서 광고를 15초의 미학이라고도 하는데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것이 광고계의 철칙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로잡은 눈길이라도 과연 그 앞에 얼마나 머물러있게 할 수 있는가?  1분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이 아닌가? 요즘은 책을 만들어도 제목을 잘 빼야 하고 잡지를 내도 주목할 만한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웹 사이트를 구성할 때도 내용물인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이미지는 더 중요하다. 떠돌아다니는 웹 피플을 멈추어 세우기 위해서는 눈에 확 띄는 그림이 필요하다. 그렇게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얄팍해서 어딘가 진중하게 머물러 있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박수근의 그림은 어떤가? 그렇게 바쁜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무례하기까지 하다. 치부책 한 장을 쭉 찢어서 연필로 쓱쓱 그림 한 장 그려서 던져주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렇게 기념관을 찾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더욱이 기념관을 찾았을 때도 많은 시간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곧 돌아나가야 했었다. 그래서 그림 앞에 서서 그의 설명을 요구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다만 그림들을 보고 나오며 이 사람은 왜 돌아서 있는 사람의 그림을 많이 그렸을까 하는 의문 하나만 던지고 돌아서 왔다. 그런데 그 질문은 생각보다 두툼한 대답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그것이 바로 박수근과 그의 아내가 주고받은 편지글이다.

    

   박수근의 아내는 금성에 살고 있었고 남편인 박수근은 평양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박수근의 아내 사랑은 지극하였던 것 같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어머니 같기도 하고 오빠 같기도 하다고 했다.  남편을 어찌나 극진히 사모하였던지 한번은 남편이 닷새간의 휴가를 내어 집에 왔다가 돌아가는 전철역에서 그에게 올린 인사 예가 사람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전철역에서 남편이 타고 갈 전철이 떠날 때 안녕을 빌려 극진히 절을 하였는데 전철은 이미 상거가 멀도록 가버리고 말아 얼굴이 붉어져서 혼이 났다고 한다. 후일에 남편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남편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때 일이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남편이라면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고 줄 수 있었던 아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싶다.

    
   
그의 그림 중에서 -내가 아는 한- 정면을 보고 있는 그림은 그의 아들을 그린 그림이 유일하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아이의 얼굴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아이를 업은 아낙을 그린 그림과 그의 아들이 7살에 죽었다는 것을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아이를 등에 업은 아내와 아들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짐작된다. 비록 그림들이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이건만 그것이 어찌 사소한 그림일까? 종이가 작아서 사소한 것일까? 연필로 그려졌기 때문에 사고한 것일까? 분명 그것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부평초 마냥 떠돌기만 하는 매맨토의 인생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박수근님의 그림"

 
  

 지금도 양구 어디쯤 가면 바툼한 곳에 앉아 주머니에서 노트를 꺼내 나무를 그리고 있는 박수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이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느니 빛의 굴절이 이렇고 저렇고 그런 것은 알 필요도 없이 삶을 그려내면 금방이라도 박수근을 닮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종이 한 장을 꺼내 따라서 그려 보라면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림이 쉽다고 어찌 그의 마음도 쉽겠는가? 수도 없이 아내의 그림을 그려낸 그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랑이다. 연필로 사랑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따라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따라 그릴 수 없는 것처럼 그의 그림엔 그런 것들이 있다.  장터에 둘러앉아 담소하는 군상의 모습이 뭐 그리 어려울까 하지만 그가 그런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동감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어떻게 따라 그릴 수 있겠는가? 진정 쉽지 않은 일이다. 화가는 원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서 얼마든지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등짐을 지고 가다가 잠시 지개를 내려놓고 어느 시골의 작은 돌 위에 앉아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박수근 화백을 생각하노라면 나는 방금 새 스케치북을 사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방금 들로 나온 풋내기 화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출처 : e - 수필
글쓴이 : 소원 원글보기
메모 : 화실 일번지.